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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이 무너진 사회 착한 사마리안법, 이 대안이 될까

국가현실과 미래

by 석천선생 2016. 10. 8.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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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이 무너진 사회? '착한 사마리아인의 법'이 대안될까

[서초동살롱<136>]"더 좋은 사회 위해 필요해" vs "기본권 제한" 찬반 팽팽머니투데이 | 김만배|이태성|양성희|한정수|김종훈|이경은 기자|기자|기자|기자|기자|기자 | 입력 2016.10.08. 06:10


[머니투데이 김만배 기자, 이태성 기자, 양성희 기자, 한정수 기자, 김종훈 기자, 이경은 기자] [[서초동살롱<136>]"더 좋은 사회 위해 필요해" vs "기본권 제한" 찬반 팽팽]

지난 8월 대전에서 발생한 택시기사 심장마비 사건, 다들 기억 하시나요. 60대 택시기사가 운행 도중 사고를 내고 심장마비로 쓰러졌지만 승객들이 자신들의 짐만 챙겨 현장을 떠났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사회적으로 큰 논란이 일었었죠. 당시 승객들은 골프 여행을 가는 비행기 시간에 맞추기 위해 현장을 빠져나간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택시기사는 인근 건물 주차관리인의 신고로 병원에 옮겨졌지만 결국 숨졌습니다.

삽화=임종철 디자이너
삽화=임종철 디자이너

지난달 30일, 이와 비슷한 일이 서울에서도 발생했는데요. 택시기사가 갑자기 호흡곤란을 호소하면서 사고를 냈는데 여기 타고 있던 승객이 신고나 응급조치를 하지 않고 현장을 떠났습니다. 당시 사고가 난 상대방 운전자가 신고를 하고 응급조치를 실시했지만 기사는 숨졌습니다. 승객은 구급대가 도착하기 전에 자리를 떠났다고 하네요.

이 같은 소식이 연달아 알려지면서 이 승객들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도덕적으로 비난받아 마땅한 일입니다. 그런데 이를 넘어서 이들에게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옵니다. 현재 우리나라에 이들을 처벌할 법 조항이 없는 만큼 새로 '착한 사마리아인의 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이를 두고 도덕의 영역에 법이 개입하는 것이 옳은지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필요한 때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습니다.

"개인주의 부작용으로 위험 처한 사람 방관하는 게 현실" '착한 사마리아인'이란 표현은 성경에서 따온 말입니다. 한 유태인이 강도를 만나 부상을 입고 길가에 버려졌는데, 동족인 유태인 제사장 등이 못 본 척 지나가버렸습니다. 그를 도운 것은 유태인들에게서 멸시를 받던 사마리아인이었습니다. 이후 위험에 처한 사람을 구하지 않은 사람을 처벌하는 법률을 통칭해 '착한 사마리아인의 법'이라고 표현하게 된 것입니다.

현재 우리 국민 절반 이상이 이 법의 도입에 찬성하고 있습니다. 리얼미터가 지난달 초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위급한 사람을 돕지 않고 지나치면 처벌할 수 있도록 법제화를 해야 한다'는 의견이 53.8%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반면 '위급한 사람을 돕는 것은 도덕의 영역이기 때문에 법제화해서는 안된다'는 의견이 39.1%인 것으로 집계됐는데요. 어느 한 쪽의 의견이 압도적이지는 않은 상황입니다.

우리 국회에서도 이 법을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시작됐습니다. 박성중 새누리당 의원이 지난 6월 형법 일부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는데요. 아마도 조만간 국회 차원에서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될 것으로 보입니다. 박 의원은 "사회에 만연한 개인주의의 부작용으로 범죄나 위험에 처해 있는 이웃을 외면하거나 방관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이미 외국에서는 이 법을 도입해 시행 중에 있지만 우리 형법에서는 개인의 자율성 침해 등을 우려해 법적 제재가 미흡한 실정"이라고 발의 배경을 설명했습니다.

박 의원의 말대로 이 법을 이미 수십년 전부터 시행하고 있는 국가들이 있습니다. 프랑스와 독일이 대표적인데요. 프랑스 형법은 '자신이 위험에 처할 우려가 없는 상태에서, 개인적으로 또는 구조 요청을 받고 위험에 처한 타인을 구조할 수 있었는데도 고의로 구조를 하지 않으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벌금형에 처한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독일의 경우도 '사고 또는 긴급상황이 발생했을 경우 여러 사정에 비춰 기대 가능한 구조를 제공하지 않으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벌금형에 처한다'고 규정합니다.

"국민들 기본권 제한 우려…사회적 논의·공감대 형성 필요해" 이 법의 도입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법 도입으로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도덕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시대가 된 만큼 어떤 방식으로든 규율이 필요하다는 것인데요. 현행 법제 하에서는 가족 관계에 있다든지, 환자를 돌봐야 하는 지위에 있다든지 하는 '보호 의무'가 있는 사람이 의무를 다하지 않았을 경우에만 처벌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이 의무를 가지는 대상자를 불특정 다수로 넓히자는 것이 '착한 사마리아인의 법'의 기본 취지인 셈입니다.

물론 반대의 목소리가 적지 않습니다. 이 법이 시행된다면 국민 모두가 잠재적 범죄자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인데요.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어느 일시 어느 장소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범죄자가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 같은 이유로 법을 개정할 때 최대한 자세하고 엄격한 조항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박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을 보면 '재난 또는 범죄로 발생한 상해 등으로 구조가 필요한 자를 구조가 가능한데도 구조하지 않은 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돼 있습니다. 이에 대해 한 법조계 관계자는 "재난과 범죄의 범위를 어디까지 볼 것인지, 구조가 가능하다는 개념을 어떻게 정립할 것인지 등에 대해 보다 구체적인 설명이 필요할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형사 처벌을 전제로 사회 질서와 규범을 세우는 게 옳은 것인지에 대한 비판적 시각도 존재합니다. 기본적으로 사회 일반의 질서는 도덕과 윤리에 뿌리를 두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것입니다. 재경지법의 한 판사는 "국민에게 의무를 더 부과하고 그 의무를 지키지 않을 경우 처벌을 하겠다는 것은 그만큼 더 국민들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일"이라며 "도덕적으로 옳지 못한 행동을 한 사람을 형사 처벌하는 것이 필요한지에 대한 충분한 사회적 공감대 형성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모든 일을 승객들의 탓으로 돌리긴 어렵겠지만 어쨌든 택시기사들이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요. '착한 사마리아인의 법'이 도입된다면 이 같은 일들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을까요? 더 나은 사회를 만들려는 마음들을 모아 활발하고 깊이 있는 논의를 시작할 때입니다.

김만배 기자 mbkim@mt.co.kr, 이태성 기자 lts320@mt.co.kr, 양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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