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숙하지만 정작 아는 게 없다. 국보 제24호이자 세계문화유산으로도 지정돼 있는 석굴암(사진) 이야기다. 신라 경덕왕 시대(8세기 중반)에 세워진 석굴암은 1960년대 초반 복원공사를 통해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그러나 1300여 년의 역사에서 지난 20세기는 우리 민족이 걸어온 험난한 길만큼 석굴암도 쓰라린 시기를 보냈다. ‘원형 논쟁’ 등 공사 이후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수많은 논란거리 때문이다. 게다가 최근엔 보존·관리 차원에서도 안정성 여부가 문제 된 바 있다. 이러한 가운데 오는 7월 1일 석굴암 증축 50주년을 앞두고 성낙주 석굴암 미학연구소장이 1990년대 말부터 지속적으로 제기해온 주요 쟁점들을 총정리한 책(‘석굴암, 법정에 서다’·불광출판사)을 발간할 예정이어서 주목된다.
재야 사학자로서 20여 년 석굴암을 연구해온 성 소장은 “오도된 주장들이 대중의 석굴암 인식에 심각한 혼란을 초래했다”며 책을 통해 크게 4가지 주요 쟁점을 다룬다. 일반인들에게까지 ‘상식(그는 이를 ‘햇살 신화’로 부른다)’처럼 여겨지는 광창설(주실 돔 지붕 정면에 동해의 아침 햇살을 받아들이는 채광창이 뚫려 있었다는 설)을 비롯, 중각석굴(重閣石窟)설, 샘물 위 축조설, 전각철거론 등이 주 내용으로, 석굴암을 ‘가상의 법정’에 세우는 형식으로 그 타당성을 가리려고 시도한다.
매혹적인 ‘햇살 신화’는 초기부터 학계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았다. 성 소장에 따르면 그들은 인도 등지의 석굴사원에 광창이 있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고, 이를 일본인들이 보수하는 과정에서 없애 버렸을 거라는 추측으로 광창설에 힘을 실어 줬다. 일부 학자들이 창이 빗물의 통로가 될 가능성과 그 위치가 본존불 얼굴보다 높다는 이유로 비판적 입장을 보였지만, ‘대세’를 뒤엎기엔 역부족이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성 소장은 대다수 국내 연구자들이 석굴암을 석굴사원으로 분류하지 않고, 그리스나 로마에서 유행한 대리석 신전과 비슷한 건축물로 여기는 것에도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는 책에서 “과학 전공자들뿐 아니라 미술사학계 일각에서도 중각석굴을 석굴암의 원형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며 “연구자들이 석굴암이 석굴사원이 아니라는 허망한 주장에 지적 없이 동조하고 있다”는 우려를 표했다.
그는 석굴 뒤편에서 솟는 샘물의 냉기를 이용해 석굴 내부의 습기를 조절한다는 ‘샘물 위 축조설’에 대해서도 “겉으로는 꽤나 과학적인 시각처럼 보이지만 허술하기 짝이 없는 반과학적인 신비주의적 발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학계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이 학설 역시 ‘신라인의 과학 정신’을 보여주는 예로서, 광창설 이상으로 대중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 성 소장은 “물 위에 집을 짓는 것이야말로 자연 원리에 위배되는, 어리석음 이상의 어리석음이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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