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위사업청이 오는 17일 방위사업추진위원회를 열고
차기전투기 60대를 구매하는 F-X 3차 사업의 유찰을 선언할 예정이다.
F-35A(록히드마틴),
유로파이터(EADS), F-15SE(보잉) 등 3개 후보기종이 제시한 가격이 모두 예상 사업비 8조3000억원을 크게 웃돌아 더 이상 가격입찰이 무의미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방사청의 무원칙한 사업 추진 방식이 유찰 사태를 불렀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가 예산 증액이 어려운 상황에서 재협상을 통한 기존의 가격입찰 방식을 고수할지, 분할 구매나 구매 대수 축소 등 다른 대안을 찾을지 주목된다.
◆명분 약한 가격입찰
지난 5일 오전 10시 방사청 내 컨퍼런스홀 2층 F-X 사업 가격 입찰장. 방사청 직원 2명이 한가롭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통상 오전 10시부터 입찰이 진행되는데도 업체 관계자들은 보이지 않았다. 천문학적인 예산이 투입되는 사업의 입찰장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잠시 뒤 보잉과 EADS 관계자 4명이 입찰장에 들어섰다. 대외군사판매(FMS) 방식으로 경쟁에 뛰어든 록히드마틴의 F-35A 담당 미 공군성 직원은 한참 뒤에야 모습을 드러냈다. 다들 일면식이 있는 듯 긴장감이나 눈치보기는 없었다. 간간이 하품을 하거나 휴대전화를 받는 장면도 목격됐다. "방사청이 내라니까 가격을 써 내는데 무슨 의미가 있나"라는 말도 들렸다. 이날 오후에 3차례 입찰이 더 진행된 뒤 6월18일부터 이어진 3주간의 F-X 관련 입찰은 55회로 막을 내렸다. 아무도 8조3000억원 이내로 가격을 써 낸 업체는 없었다.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공정한 게임'이 아니었다는 판단이 크게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F-X 사업의 최종 기종 평가에서 가격은 100점 만점에서 15점에 불과했다. 가장 낮은 가격과 가장 높은 가격의 점수 차이가 얼마인지도 알려지지 않았다. 통상적으로 무기 구매 시 가격이 갖는 가중치는 15% 내외다. 하지만 1조원대 이하인 경우가 대부분이고 그 이상의 경우 가중치를 높이는 게 일반화돼 있다. 이번 F-X 사업은 운영유지비까지 포함할 때 30조원에 달하는 대형사업이다. 업체를 끌어들일 유인책으로 약했다는 얘기다. 더욱이 상업구매로 참여하고 있는 F-15SE와 유로파이터에게는 8조3000억원 이내로 가격을 써내도 최종기종으로 선택된다는 보장이 없었다. 가격을 내릴 여지가 없었고 자연 유찰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개발 중인 F-35를 염두에 둔 무리한 설계
이번 F-X 사업은 후보 기종의 성능과 군수유지 등에 대한 테스트를 통해 중간에 탈락시키지 않고 이를 점수화해 최종 기종을 선정한다는 방식을 택했다. 후보 기종이 함량 미달이더라도 끝까지 가져갈 수 있는 셈이다. 특정 기종 봐주기 의혹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논란이 된 가격입찰은 F-X 소요제기 단계였던 2008∼2009년 시점에는 빠져 있었다. 특정후보 기종으로 민다는 비판이 제기되자 지난해 갑자기 끼워 넣은 옵션이다.
방사청은 개발이 끝나지 않은 F-35를 FMS를 통한 후보기종으로 받아들인 뒤에는 비행테스트를 거부하는 것도 용인했다.
하지만 최종 가격 입찰에서 F-35가 미 정부의 FMS 관련법에 따라 확정가를 제시하지 못하는 것은 용인하기 힘든 문제였다. 경쟁업체들 사이에서 "F-35는 놔두고 우리들만 가격을 내리라고 종용하는 것은 공평하지 못하다"는 불만이 터져나왔다. 더구나 미 의회에 통보된 F-35의 가격은 우리 정부가 예상한 사업비를 50%나 초과하고 있었다. 미 국방안보협력국(DSCA)은 지난 4월
록히드마틴사가 한국에 판매할 F-35 60대의 가격이 108억달러(약 12조2500억원)에 이른다고 미 의회에 통보했다. 군 관계자는 "미 의회에 제출된 가격이 나오기는 했지만 확정가가 아니었고 F-35의 가격을 어느 정도로 추산할 것인지는 전적으로 방사청의 몫이었다. 다른 업체와의 형평성을 맞추는 데 고민이 적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병진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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