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한 입력 2021. 08. 22. 06:15 수정 2021. 08. 22. 07:34
행진 때 장병마다 팔다리 제각각
제식훈련, 유격 체조도 쉽지 않아
신병 95% 초등 3학년 미만 독해력
지난 15일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을 점령했다. 아프간 정부군은 별다른 저항도 없이 무기를 내려놨다. 아슈라프 가니 대통령은 국외로 도망쳤다. 미국은 ‘20년 전쟁’을 끝냈지만, 또 다른 베트남 전쟁이라는 패전의 멍에를 쓰게 됐다.
미국은 지난 20년 동안 2조 330억 달러(약 2650조원)를 투입해 아프간 정부를 세우고 군대를 키웠다. 이런 노력도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미군의 압도적인 지원을 받는 30만여명의 아프간 군대는 이보다 적은 7만여명의 탈레반을 왜 막아내지 못했을까.
아프간 정부군(ANSF)은 육군(ANA)이 대부분인 군인 18만여명과 경찰(ANP) 15만여명으로 꾸려졌다. 미국은 2013년 6월 아프간 정부에 치안 책임을 넘긴 뒤 11~18명인 군경자문팀 총 454개를 투입해 교육ㆍ훈련을 지원했다.
하지만 아프간 군대는 정규군이라고 말하기 창피한 수준이다. 능력ㆍ의지ㆍ희망이 없는 ‘오합지졸’ 집단으로 ‘지리멸렬’ 무너진 게 패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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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간 군대에 입대한 신병은 기초적인 제식 훈련이나 유격 체조(PT 체조) 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발맞춰 행진하는 것도 어려운 수준이다. 초등학생보다 못한 움직임을 보인 배경은 교육수준에 있다.
아프간 인구 중 43%만 읽고 쓸 수 있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신병 가운데 불과 5%에 해당하는 경우만 초등학교 3학년 수준 이상의 독해력을 갖는다. 가족이 몇 명인지 숫자로 말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아프간 군대는 말이 안 통한다. 아프간에서는 공용어인 파슈툰어ㆍ다리어뿐 아니라 다양한 기타 언어도 사용한다. 단체로 모여진 군대를 움직일 때 한가지 말로 명령이 안된다.
아프간은 하나로 뭉치지 못했다. 7개의 주요 민족과 혈연중심의 지역 거점 부족 및 군벌로 파편화된 사회적 배경 때문이다. 다양한 이해 집단이 느슨하게 연결돼 동상이몽처럼 움직였다.
외침을 받아온 아프간 주민은 생존을 위해서라면 본능적으로 움직였다. 순식간에 정부군에서 탈레반 반군으로 군복을 바꿔 입었다. 신병을 모집해도 빈번하게 탈영해 제대로 된 군대를 꾸려나갈 수 없었다.
그나마 아프간 특수부대는 탈레반도 두려워하는 정예부대로 활약했으나 워낙 규모가 작아 패전의 흐름을 바꿀 수 없었다.
이런 상황인데 오바마 행정부는 정부군 규모를 늘리는 데 힘을 쏟았다. 2008년 14만 8000여명에서 2011년 30만여명을 넘어섰다. 양적 성장에 치중해 질적 발전이 뒤로 밀리면서 예고된 재앙이 싹을 틔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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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타임스는 아프간 정부군 규모는 밖으로 알려진 30만명보다 적은 5만여명이라고 추정했다. BBC는 30만명 중 상당수는 장부에만 존재하는 ‘유령 군인’이라고 보도했다.
미 정부도 아프간 재건 특별감사관실(SIGAR)이 펴낸 보고서에서 “아프간 병력에 대한 데이터의 정확성이 의심스럽다”며 시인했다.
부패한 아프간 관료는 군인 숫자를 부풀려 지원비를 가로채거나 급여를 챙긴다. 군대와 경찰에 이름만 올려놓고 월급을 받아가는 가짜도 태반이다.
생체검증 시스템을 도입했지만 정확한 병력 규모를 알 방법도 없고 얼마나 많은 병력이 실제 출근을 하는지도 파악이 안 됐다.
오히려 실제 복무하는 군인과 경찰은 몇달 동안 급여를 받지 못해 외상으로 식료품을 구매하다가 탈영하는 경우가 속출했다. 이들 대부분이 급여 200달러(약 23만원)로 살아가는 빈민층 출신이라 생계 곤란을 견뎌내기 어려웠다.
이런 처우 때문에 지난해 병력 중 25% 정도가 교체될 정도로 이직률이 높았다. 전문적인 군인과 경찰을 길러낼 틈이 없다. 탈레반과 맞서 싸울 수 있는 전투태세를 갖추기 어려웠던 배경이다.
아프간에는 제대로 된 군 지휘관도 없었다. 아프간 훈련단장을 맡았던 윌리엄 콜드웰 미 육군 중장은 “병사를 만들고 무장하는 건 빠르게 가능하지만, 지휘관을 길러내는 건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미국이 20년간 직접 전쟁하는데 약 957조원, 아프간 군대 훈련과 장비 구축 및 급여 지급에 약 100조원을 투입했다.
지난 14일 뉴욕타임스는 “아프간 정부의 부패가 지속하자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이 아프간 정부와 군대를 영구적으로 지원할 수 없다’는 생각이 강화됐다”고 전했다.
아프간 정부의 뿌리 깊은 부패가 미군의 철군을 결정한 근본적 배경이라는 뜻이다.
아프간 정부군 고위 지휘관은 탈레반과 항복을 두고 거래를 했다. 탈레반 지도자는 정부군에 금전ㆍ협박ㆍ관대한 처분 등을 약속하며 무장 해제를 설득했다.
미군이 탈레반과 싸우라고 돈과 무기를 줬던 노력은 아무런 효과를 보지 못했다.
이 정도면 아프간을 ‘손절’한 미국 탓만 할 수 없다. 지난 14일 바이든 미 대통령이 “미군이 1년 또는 5년을 더 주둔해도 아무런 차이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던 배경이다.
아프간 군대가 쓰던 항공기를 비롯한 헬기ㆍ드론ㆍ전차 등 미국산 무기는 탈레반 수중에 들어갔다. 탈레반 반군은 이제 미국제 M16ㆍM4 소총을 들고 거리를 활보한다.
미 국방부도 아프간 정부군에 제공한 무기와 장비가 탈레반 손에 넘어갔다고 확인했다. 미국이 아프간 재건에 쓴 돈은 칼이 돼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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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간 군대는 미군이 철군을 시작한 지 불과 3개월여 만에 무너졌다. 전쟁하면서도 동기가 없었다. 부패한 정권은 미국이 만들어준 밥상도 엎었다. 아프간은 사실상 탈레반과 싸우는 미국의 ‘대리전쟁’에 머물렀다.
지난 16일 바이든 대통령은 “우리는 그들 자신의 미래를 개척하도록 모든 기회를 제공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그런 미래를 위해 싸울 의지까지는 줄 수 없었다”고 했다.
싸우기도 전에 승패는 결정됐다. 탈레반은 수니파 극단주의 정치조직으로 이념적 결속이 강하다. 왜 싸워야 하는지 동기가 분명하다. 미국과의 ‘성전’에서 대등하게 싸운다며 사기도 높다.
아프간 주민은 역사적으로 외세 개입에 대한 반감을 갖고 있다. 먼저 들어왔던 구소련도 10년 전쟁 끝에 물러났다. 미국도 ‘타인’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전쟁을 시작한 2001년 10월부터 지난 4월까지 군인과 민간인 17만여명이 죽거나 다쳤다. 희생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박용한기자park.yong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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