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재 입력 2021. 08. 01. 05:01
이철재의 밀담
조선의 팽배수가 21세기 해전에서 근접방어무기(CIWS)로 되살아난다.
팽배(彭排)는 조선 초기 방패를 뜻했다. 팽배를 들고 다니는 팽배수는 칼로 무장했다. 이들은 본진의 제일 바깥 쪽에 배치됐다. 적의 공격을 방패로 막은 뒤 칼로 근접전을 벌였다. 『조선왕조실록』에 보면 태종 10년 팽배수와 창수가 각각 목검과 목창을 겨뤘는데, 다음 날 창수 2명이 죽었다고 나와 있다. 그만큼 팽배수의 전투력이 상당했다는 얘기다.
그런데, 방위사업청의 근접방어무기체계-II의 윤곽이 드러났다. 올해부터 2030년까지 3500억원을 투입해 CIWS-Ⅱ를 개발하는 사업이다.
최근 방사청의 제안서평가결과 LIG넥스원이 한화시스템 보다 높은 점수를 받았다. 방사청은 ”최종적으로 사업자가 결정된 것은 아니다“고 강조하고 있다. LIG넥스원도 ”공식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며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그러나 방산업계에선 사실상 LIG넥스원이 이 사업을 따낸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CIWS는 함대공 미사일의 방어망을 뚫고 날라오는 적의 대함 미사일을 기관포로 떨구는 무기다. 아군 함정에 돌진하는 수상 목표물도 제압할 수 있다. 팽배수가 방패로 본진을 방어하면서, 칼로 적을 물리치는 임무를 그대로 해낸다.
미국 육군은 미국 해군의 CIWS인 팰링스를 육상용으로 개조해 로켓ㆍ고사포ㆍ박격포 방어(C-RAM) 시스템을 내놨다. 적 게릴라가 간이 로켓이나 박격포로 미군 기지를 기습적으로 때리면, 이를 막아내는 무기다. 실제로 효과가 제법 있다고 한다.
LIG넥스원은 지난달 6~12일 부산에서 열린 국제조선해양대제전(MADEX) 2021에서 실물 크기의 CIWS-Ⅱ 모형을 선보였다.
LIG넥스원에 따르면 이 회사의 CIWS-Ⅱ는 30㎜ GAU-8 어벤저 개틀링 건을 달았다. 이 기관포는 ‘탱크 킬러’ 또는 ‘악마의 십자가’란 별명을 가진 A-10 선더볼트Ⅱ의 주력 무기다. A-10이 낮게 천천히 날면서 이 기관포로 살짝 긁어만 주면 여러 대의 탱크가 순식간에 파괴될 정도로 강력하다.
LIG넥스원의 CIWS-Ⅱ는 텅스텐으로 만든 관통탄을 초당 70발 속도로 쏜다. 관통탄은 26㎜ 두께 강판을 뚫을 수 있다. CIWS-Ⅱ는 또 대함 미사일이라면 사거리가 2㎞, 수상 표적이라면 12㎞다. 2㎞ 이내 표적은 40% 정도 명중시킨다.
이처럼 LIG넥스원의 CIWS-Ⅱ가 화력과 명중률을 키운 이유가 있다. 함대공 미사일이 많이 좋아졌지만, 실전에서 적의 모든 대함 미사일을 다 막을 순 없다. 그래서 CIWS가 최후의 보루로 나서줘야 한다.
CIWS가 대함 미사일의 탄두부 일부를 망가뜨렸다고 하더라도 운동에너지가 남아 있으면 계속 날아온다. LIG넥스원의 CIWS-Ⅱ에서 원샷원킬의 파괴력이 필요한 이유다. 그리고 대함 미사일을 요격할 때 미사일의 상ㆍ하면이나 측면보다 정면을 노리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명중률이 중요하다.
게다가 최근 마하 5(약 시속 6125㎞)가 넘는 극초음속 대함 미사일이 나오면서 CIWS-Ⅱ의 화력과 명중률이 더 중요해졌다.
LIG넥스원의 CIWS-Ⅱ는 능동형 전자주사식 위상배열(AESA) 레이더가 360도를 실시간으로 감시한다. AESA 레이더는 소자 하나하나가 작은 레이더와 같다. CIWS-Ⅱ의 4면엔 AESA 레이더판이 붙어있다. 탐지 시간이나 공간에 공백이 전혀 없다. 한국 해군이 지금 쓰고 있는 CIWS인 골기퍼와 팰링스는 분당 60번 돌아가는 2차원 레이더를 탑재했다.
LIG넥스원의 CIWS-Ⅱ는 탐지정보 처리속도가 골기퍼보다 1000배 이상 빠르다고 한다. 여기에 적이 강력한 방해 전파를 쏴 레이더 탐지를 방해하는 상황을 대비해 전자광학추적시스템(EOTS)을 갖췄다.
촘촘한 탐지망과 빠른 처리속도를 갖춰야만 앞으로 무리를 지어 자폭하려는 무인기나 무인 보트를 CIWS-Ⅱ가 제압할 수 있다.
방사청이 CIWS-Ⅱ 사업을 시작한 이유는 이렇다. 한국 해군이 제일 먼저 도입한 CIWS인 골기퍼는 제조사가 더 생산하지 않는다. 대체품으로 들여온 팰링스는 제조사가 값을 2배로 높였고, 수리비도 확 뛰었다. 창정비를 받으려면 미국에 보내야만 했다.
방사청은 CIWS-Ⅱ 사업을 통해 10여 문의 시제품과 실전 무기를 생산할 계획이다. 업계에선 생산량을 20문 이상을 예상하고 있다.
'K-방패' CIWS-Ⅱ의 수출 전망도 높다. CIWS를 생산하는 국가는 미국을 제외하곤 중국과 러시아다. 유럽이나 미국에 우호적인 국가에선 중국ㆍ러시아제 CIWS를 꺼리는 게 당연하다. LIG넥스원의 CIWS-Ⅱ는 미국 레이시언의 팰링스보다 가격 경쟁력이 있다.
CIWS-Ⅱ 사업이 한국 해군과 방산업계 모두에게 좋은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사업이 되길 바란다.
이철재 기자 seajya@joongang.co.kr, 박용한 기자 park.yong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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