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찬 입력 2019.02.15. 10:23 수정 2019.02.15. 10:44
유럽제 A400M 대형수송기와 국산 KT-1, TA-50 훈련기를 맞교환하는 1조원 규모의 스와프 딜(swap deal)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스페인은 지난해 7월 영국 판보로 국제에어쇼 행사장에서 우리측에 스와프 딜을 언급한데 이어 같은해 11월 마드리드에서 열린 한국-스페인 방산군수공동위원회에서 스와프 딜을 공식 제안했다. 이에 정부는 내부 검토를 거쳐 경제성이 있다고 판단, 스와프 딜을 추진할 태세다.
◆이달 말 한국-스페인 협의 시작
14일 정부와 군 당국에 따르면, 방위사업청 관계자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우리측 협상단은 25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A400M과 국산 훈련기의 스와프 딜을 협의할 예정이다.
스페인 정부는 자국이 구매하기로 한 A400M 27대 중 4~6대를 한국에 판매하는 대신 한국의 KT-1 기본훈련기 34대와 TA-50 고등훈련기 20~24대를 구매하는 맞교환거래를 제안하고 있다. 금액으로는 1조원 규모다. 스페인 국방부는 유럽 에어버스에 A400M 27대를 주문했으나 재정적 이유로 13대를 운용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에어버스와 추가 협상을 통해 13대를 제3국에 판매하기로 결정했다.
A400M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공군의 행보도 빨라지고 있다. 공군은 지난해 말부터 대형수송기 도입사업 기종으로 A400M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미국 보잉의 C-17 대형수송기가 단종된 상황에서 현재까지 생산되는 기종은 A400M뿐이다.
이에 따라 공군은 합동참모본부에 대형수송기 도입 사업에 대한 소요검증을 요청했다. 공군의 요청은 지난달 합참을 통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합참이 대형수송기 도입사업을 진행해도 된다고 승인을 한 것이라는 의미다. 이에 따라 이르면 4월쯤 발표될 ‘2020~2024 국방중기계획’에 대형수송기 도입사업이 포함될 가능성도 높아졌다는 평가다. 국방중기계획에 대형수송기 도입사업이 포함될 경우 관련 절차 추진에도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군 소식통은 “재난 구호와 유엔평화유지군(PKO) 활동, 재외국민 보호 등의 임무를 수행하려면 장거리 비행이 가능한 A400M 같은 대형수송기가 필요하다”며 “대형수송기를 확보하면 구호물자 전달 등을 비롯한 해외 수송 임무 수행에도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스페인으로부터 스와프 딜을 제의받은 정부는 방위사업청을 중심으로 구체적인 사업 추진 방안을 검토해왔다. 당초 1월 안에 스페인 정부에 스와프 딜 관련 회답을 보낼 것으로 예상됐으나 한 달 가까이 늦어진 상황이다. 군 관계자는 “검토해야 할 것이 많다보니 시간이 걸린다”며 전례를 찾기 힘든 무기거래에 대한 부담감을 내비쳤다.
군과 방위산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방위사업청은 스페인과의 스와프 딜과 관련해 두 가지 방안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첫 번째는 스페인에 KT-1과 TA-50을 판매하고 반대급부로 A400M을 들여오는 형태의 절충교역을 추진하는 방안을 방위사업추진위원회에서 의결하는 방안이다. 스페인정부가 처음 제안한 내용을 대부분 수용하는 형태라는 평가다. 2007년 터키에 KT-1을 수출하면서 절충교역으로 터키 하벨산의 공군전자전훈련장비(EWTS)를 들여왔던 전례를 참고한 것으로 풀이된다.
C-17이 단종된 상황에서 두 번째 안은 사업 공정성을 확보한다는 측면에서의 장점이 있다. 반면 공군과 스페인 정부의 반발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
공군 내부에서는 C-130J-30 도입에 부정적인 기류가 감지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군 관계자는 “A400M 대신 C-130J-30을 들여올 경우 대형수송기 사업을 중단하고 전투기를 더 사오는 게 낫다는 말도 나온다”고 말했다.
경쟁기종보다 가격이 비싼데도 공개경쟁입찰을 하지 않고 KT-1와 TA-50을 구매하려는 스페인 정부가 형평성 문제를 들어 대형수송기 경쟁입찰에 반발할 가능성도 있다. C-130J보다 대형인 A400M을 서로 경쟁시키는 방안이 적절한가에 대한 논란도 우려된다. 록히드마틴이 대형수송기 사업에서 수주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할 경우 사업에 참여할지 여부를 장담할 수 없다. 이와 관련해 방사청 내부에서는 사업관리분과위원회에서 ‘교통정리’를 한 뒤 방추위에 상정하는 방안도 거론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스페인과의 항공기 스와프 딜은 공군의 전력증강과 국내 방위산업 진흥이라는 두 가지 요소가 뒤섞인, 전례가 드문 사업이다. 해외에서 무기를 구매하거나 국산 장비를 판매하기만 했던 군 당국과 방위산업계 입장에서는 풀어가기가 쉽지 않은 구도다.
방위사업청은 방산수출 진흥과 군이 필요로 하는 무기를 적절한 방법으로 조달하는 기능을 함께 갖고 있다. 정책 컨트롤타워가 제대로 작동하기만 하면 국익 창출을 극대화하면서 군의 소요를 충족시키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게 가능한 구조다. 스와프 딜이 성사된다면 항공 선진국인 유럽에 군용기를 판매해 미국 보잉의 BTX 훈련기, 영국 호크 훈련기 등과 세계 시장에서 다시 한번 겨뤄볼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 공군도 대형수송기 도입을 통해 정부의 재난구호 외교를 더욱 효과적으로 뒷받침할 능력을 얻게 된다. 1조원 규모의 스와프 딜이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에 군 안팎의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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