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 정치적인 긴장이 30년 전쟁의 마지막 밑거름을 마련했다. 신성로마 황제들은 엄밀히 말해 자신의 직할지에서만 세금과 병력 징발을 할 수 있는 봉건영주에 불과했지만, 그 이름에 걸맞게 ‘로마 황제’처럼 단일 통치자로서 제국을 호령할 수 있기를 내내 꿈꿔왔다. 그래서 제후들 일부가 신교도라는 것을 빌미로 그들을 압박하고 영지를 몰수하고 싶어 했으며, 1540년 이후 생긴 예수회는 황제의 야심에 부응해 신교도들을 압박하는 선봉 역할을 했다. 반면 신교 제후들은 반대로 황제의 간섭에서 완전 독립을 꿈꿨고, 그런 목표의식은 가톨릭 제후들도 다르지 않았다.
이렇게 제국 내에서 중앙과 지방의 긴장이 날로 고조되는 가운데 국제정치적으로도 역시 긴장이 커졌다. 카를 5세 때 독일과 하나였던 스페인은 이제는 분리되었지만 그래도 같은 합스부르크가문이라는 인연으로 신성로마제국과 연대하려 했다. 그것은 스페인에게서 벗어나려 분투하던 네덜란드와 두 합스부르크 제국을 양쪽으로 상대하던 프랑스를 긴장시켰다. 독일이 가톨릭을 중심으로 하는 더 통일된 국가로 발전할 움직임은 스웨덴이나 덴마크 같은 인근의 신교 국가들로서도 두고만 볼 수 없었다. 17세기 초에는 라인 강, 피레네 산맥, 지중해와 발트 해가 모두 일촉즉발의 긴장으로 덮여 있었다.
그리고 1618년, 무려 세 개의 혜성이 나타났다. 케플러 (Johannes Kepler, 1571~1630)와 갈릴레오(Galileo Galilei, 1564~1642)는 이를 분석하여 과학적인 설명을 내놓았으나, 과학은 과학일 뿐, 뭔가 큰 일이, 끔찍하고 살벌한 일이 벌어지리라는 예감은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그 예감은 맞았다.
참고문헌:버나드 몽고메리, [전쟁의 역사], 책세상, 2004; C. V. 웨지우드, [30년 전쟁], 휴머니스트, 2011; 메리 풀브록, [분열과 통일의 독일사], 개마고원, 2000; P. R. 파머-J. 콜튼, [서양근대사], 삼지원, 1985; 김용구, [세계외교사], 서울대학교출판부, 2006; 이동언, “30년 전쟁과 합스부르크 왕가”, 조선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8; 송요태, “30년 전쟁의 영향에 관한 연구”,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1; 송요태, “30년 전쟁과 구스타프 아돌프”, 육군제3사관학교논문집. 199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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