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찬 입력 2018.11.11. 06:02
그 중에서도 전투기를 자체적으로 만들어 운용하는 것은 국방 분야의 ‘로망’으로 꼽힌다. 자주국방의 의지를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좋은 무기인데다 첨단 기술 축적과 항공우주산업 생태계 구축 등의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대한 개발비와 생산비용, 기술적 장벽 등으로 전투기 개발 능력을 보유한 국가는 시간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현재 KF-X 개발 과정에서 핵심은 무장 통합이다. 항공무장은 대부분 미국이나 이스라엘 등 해외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 항공기와 무장 통합에 필요한 기술자료를 외국에서 획득하는 것이 중요하다.
문제는 미국제 무장 장착 관련 기술자료 이전이 3년 전부터 난항을 겪었다는데 있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최재성 의원이 9일 방위사업청 등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5년 12월 한미 정부는 안보협력위원회(SCC)를 열어 미국제 무장 기술자료 수출 문제를 논의했다. 이 회의에서 미국측은 “KF-X 시제기가 없어 미국제 무장 기술자료 수출승인 검토는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미 양측은 지난 5~7월 방산기술협력위원회(DTICC), 한미 통합국방협의체(KIDD), SCC를 잇따라 열어 KF-X 상세설계 기준에 준해 기술자료를 확보하는 방안을 논의했으나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결국 지난 8월 한미 정부와 방산업체 등이 참여한 실무회의에서 KF-X 상세설계에 필요한 기술자료를 선별, 미국 정부 보증에 의한 대외군사판매(FMS) 방식 대신 상업구매로 우선 추진키로 합의했다.
상업구매 방식을 택해도 미국 정부의 승인 등 관련 절차가 필요한 만큼 실제 기술자료 획득에는 시간이 걸린다. 방사청은 독일제 IRIS-T 단거리 공대공미사일, 영국제 미티어 중거리 공대공미사일 체계통합으로 개발 일정을 맞춘다는 입장이나, 2021년 출고될 KF-X 시제 1호기에 미국제 무장 통합이 완전히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2026년까지 다기능위상배열(AESA) 레이더 등 국산 전자장비와 미국제, 유럽제, 국산 무장을 통합하는데 주어진 시간은 5년. 사소한 결함이라도 발생하면 전체 개발 일정에 차질이 우려된다.
미국제 무장 통합 문제가 봉합 국면에 접어들자 이번엔 ‘인도네시아 리스크’가 터졌다. 지난달 21일 위란토 인도네시아 정치법률안보조정장관은 인도네시아 정부가 차세대 전투기(KF-X/IF-X) 개발 참여조건을 재협상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한국과 인도네시아는 2026년까지 KF-X/IF-X를 개발, 생산하는 방안을 추진해왔다. 인도네시아는 전체 개발비(8조5000억원)의 20%인 1조7000억원을 투자하는 대신 시제기 1대와 각종 기술 자료를 이전받은 뒤 차세대 전투기 50대를 인도네시아에서 생산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인도네시아는 지난해와 올해 상반기 사업 분담금 등 2380억원을 한국 정부에 지급하지 않아 중도하차 우려가 제기됐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KF-X/IF-X 사업을 계속 추진하는 대신 재협상을 통해 자국의 사업비 부담을 줄이고 기술이전 항목을 늘리겠다는 입장이다. 덜 주고 더 받겠다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측이 인도네시아에 쥐어줄 ‘카드’가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KF-X/IF-X 개발 계약은 한국항공우주산업(KAI)과 인도네시아 정부 간에 체결됐다. KF-X 개발업체 선정과정에서 KAI와 대한항공은 경쟁적으로 인도네시아에 러브콜을 보냈다. 그 결과 인도네시아는 좋은 조건을 보장받았다. 재협상을 한다 해도 우리측에 손해만 있을 뿐, 이익이 될 가능성은 낮다.
기술적 측면에서도 우리측이 이전할 기술이 많지 않다. 이슬람국가인 인도네시아에 미국 기술을 이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인도네시아도 국영 업체인 PTDI가 항공기를 개발, 제작한 경험이 있어 기초적 수준의 기술자료 이전은 거부할 공산이 크다.
중국과 일본보다 재정적, 기술적 여건이 열악한 우리나라 입장에서 전투기 개발에 성공하려면 효율적인 프로그램 관리가 필요하다. 하지만 KF-X 시제기가 등장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사업 구조를 흔드는 일이 일어나는 등 잡음이 발생하고 있다. 벨기에가 F-16 전투기를 F-35A로 대체하기로 결정하는 등 F-35A를 채택하는 국가가 늘어나는 반면 내부무장창도 없는 KF-X가 전술적으로, 산업적으로 얼마나 큰 성과를 낼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되는 실정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개발 일정에 차질이 빚어질 경우 KF-X 회의론을 막기 어려울 것으로 보여 정부와 KAI의 대응이 주목된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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