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18.05.28. 09:19 수정 2018.05.28. 11:08
사흘을 굶었다.
굶주림에 못 견뎌 배를 움켜쥐고 나선 광주의 새벽 거리는 고요했다.
'건강한 몸이 자산'이라는 어른들의 말처럼 몸뚱이 하나로 먹고살아 보려고 경남 거제에서 용접 기술을 어깨너머로 배웠다.
10만원 남짓한 돈은 금세 바닥났고, 사흘 동안 굶주림에 못 견딘 S군은 남의 차를 뒤지다가 결국 경찰서로 붙들려왔다.
(광주=연합뉴스) 박철홍 기자 = 사흘을 굶었다.
굶주림에 못 견뎌 배를 움켜쥐고 나선 광주의 새벽 거리는 고요했다.
배고픔 끝에 찾아온 어지럼증을 억지로 밀어내고, 주차된 차량의 문을 하나씩 잡아당겼다.
'덜컥' 차 문이 열렸다.
주인 모를 차 안에 들어가 던져놓은 듯 놓여있는 1천400원을 챙겼다.
빵과 우유 하나쯤은 사 먹을 수 있는 돈이었으나, 부족했다.
다른 차량의 문을 잡아당기려는 찰나, 붉고 푸른 경찰차 경광등이 아련하게 시야를 덮쳐왔다.
S(22) 군은 지난 3월 22일 오전 4시께 광주 북구 오치동 주차된 차량에서 현금 1천400원을 훔쳤다가 경찰에게 붙잡혔다.
그는 '천애 고아'였으며 스스로 '가장 떠올리기 싫은 기억'이라고만 말하고 말문까지 닫아버렸다.
그는 알 수 없는 사연 탓에 태어나자마자 혼자가 됐고 미성년자를 벗어나기까지 보육원에서 자랐다.
보육원을 떠나야 할 때부터는 찜질방을 전전하며 살았다.
'건강한 몸이 자산'이라는 어른들의 말처럼 몸뚱이 하나로 먹고살아 보려고 경남 거제에서 용접 기술을 어깨너머로 배웠다.
기술을 배우며 사귄 사회 선배와 함께 지난해에는 베트남으로 나가 일도 해봤다.
박봉의 일당을 모아 600여만원을 손에 쥐었지만, 어딘지도 모를 고향이 그리웠던 S군은 귀국했다.
귀국 후 세상살이는 쉽지 않았다. 베트남서 땀 흘려 모았던 600만원도 잘 아는 형이 훔쳐 달아나는 등 시련이 잇따랐다.
홀로 남은 그는 10만원을 손에 쥐고 어찌 살아야 하나 고민하다가, 무작정 거제도에서 광주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탔다.
베트남에서 만난 한국 사람 중 좋은 이미지가 남았던 '광주사람' 덕에 "광주가 가보고 싶었다"고 그는 말했다.
광주에서 지인을 통해 직장을 구해보려 했지만, 휴대전화도 없는 S군은 지인과 연락도 못 하고 다시 찜질방을 전전하며 하루하루를 살았다.
10만원 남짓한 돈은 금세 바닥났고, 사흘 동안 굶주림에 못 견딘 S군은 남의 차를 뒤지다가 결국 경찰서로 붙들려왔다.
사정이 딱해도 처벌을 피할 수 없는 처지였지만, S군을 보듬어 준 것은 광주사람이었다.
수사과정에서 그의 딱한 사정을 알게 된 광주 북부경찰서 형사과는 S군을 도울 방안을 찾았다.
광주고용복지플러스 센터와 광주 북구청 복지팀이 만나 S군이 지낼 임시 숙소를 알아봐 주고,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신청과 취업도 도왔다.
그는 지난 23일 전남의 한 공장에 생산직 직원으로 채용됐다.
그는 "출근한 지 얼마 안 돼 아직 모르는 것이 많아 어리둥절하다"면서도 "죄인인 저를 이렇게까지 도와준 경찰과 광주사람들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광주 북부경찰서 김삼곤 강력 4팀장은 "비록 죄를 저지르고 붙잡혀 온 죄인이지만, 그도 사회의 또 다른 피해자라는 생각과 장래 또다시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것을 예방한다는 차원에서 도왔다"며 "S군의 절도죄는 생계형 경미 범죄에 대한 처벌 기준에 따라 감경 심사를 받도록 돕겠다"고 밝혔다.
pch80@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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