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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에 확인전화하니 위장 콜센터..더 교묘해진 '그놈 목소리'

과학 韓國

by 석천선생 2018. 3. 9.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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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희준 입력 2018.03.09. 06:30 수정 2018.03.09. 07:40

 

신용정보사이트 채무 상황 파악
금융기관 사칭, 대출용 인지대 요구
악성앱 깔게 하고 확인전화 가로채
작년 대출빙자 사기 4만 2248건
전년보다 건수 13.5% 늘어나
선입금 의심하면 보이스피싱 의심
확인전화, 휴대폰 아닌 유선전화로

[이데일리 노희준 기자] “지금 생각해도 어이없는 짓을 어떻게 아무렇지도 않게 했는지, 그때는 마치 최면에 걸린 것 같았어요.”

충남 서산에서 팬션업을 하는 김모(70)씨는 지난해 12월 당한 보이스피싱 사기가 지금도 황당하기만 하다. 대형 증권사에서 정년퇴직한 김씨는 자신이 보이스피싱 사기 피해자가 될 것이라곤 생각도 못했다.

“서민자금대출이어서 연 1%로 2억원까지 빌려 드려요. 마이너스통장으로 한번 이용해 보시겠어요?”

팬션을 증축하기 위해 자금이 필요했던 김씨는 때마침 걸려온 대출권유 전화를 받고 혹했다. 자신을 A은행 이00 대리라고 소개한 직원은 사근사근한 말투로 “인지대로 2000만원을 입금하면 바로 대출 승인을 내고 인지대도 3시간 내에 환불해 주겠다”고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대출 인지대가 2000만원이나 한다는 게 터무니 없는 얘기지만 그때는 그럴듯하게 들렸다.

김씨는 확인차원에서 A은행 대표번호로 전화를 했다. 방금 전 통화한 이OO 대리가 전화를 받았다. 혹시나 했던 김씨는 안심했다.

그러나 이 역시 사기였다. 김씨가 이OO 대리와 통화중에 마이너스통장 개설에 필요하다고 해서 안내대로 깔아놓은 애플리케이션(앱)이 문제였다. 이 앱이 스마트폰을 해킹해 보이스피싱 조직에서 만들어놓은 위장 콜센터로 전화를 연결한 것이다. 김씨는 이OO 대리가 알려준 계좌로 2000만원을 송금했고 그 돈을 고스란히 날렸다.

(그래픽=이데일리 이동훈 기자)
◇ 국내 총책 1명+콜센터 상담원 12명 등 무더기 검거

은행을 사칭, 저금리로 돈을 빌려주겠다고 속여 돈을 뜯어내온 보이스피싱 일당이 경찰에 검거됐다. 이들은 피해자들을 유인, 스마트폰에 악성 앱을 깔게 해 확인전화를 가로채는 수법으로 피해자들을 속였다.

서울 동작경찰서는 중국 보이스피싱 콜센터 국내 모집총책 정모(32·여)씨를 ‘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 방지 및 피해금 환급에 관한 특별법’ 및 의료법 위반(불법 문신 시술업소 타투샵 운영) 혐의로 구속하고 위장 콜센터 상담원으로 일한 12명을 ‘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 방지 및 피해금 환급에 관한 특별법’ 위반 혐의로 검거했다고 7일 밝혔다.

경찰은 보이스피싱 조직에서 위장 콜센터 상담원으로 일한 12명 중 장모(25·여)씨 등 5명을 구속하고 김모(24)씨 등 7명은 불구속했다.

이들은 2016년 11월부터 올해 1월초까지 중국 칭다오에 있는 사무실에서 은행 직원을 사칭, 보이스피싱으로 20명에게서 2억원을 뜯어낸 혐의를 받는다.

◇ 악성앱 설치해 전화 가로채기

이번에 덜미가 잡힌 일당은 신종수법인 ‘대출빙자+악성앱’ 보이스피싱으로 피해자들을 속였다. 금융기관을 사칭해 대출을 해주겠다고 속여 인지대 등의 명목으로 돈을 가로채는 전통적인 대출빙자형 보이스피싱에 해킹용 악성 앱을 결합한 형태다.

이들은 우선 ‘오토콜(전화자동발신시스템)’을 통해 무작위로 전화를 걸어 “마이너스통장을 개설해 주겠다”고 대출을 권유했다. 돈을 빌린 의향이 있는 이들이 나타나면 조직원이 직접 피해자와 통화해 인지대 명목이나 기존 대출 상환용으로 선입금이 필요하다고 속여 돈을 가로챘다. 주로 김씨처럼 자금수요가 많은 40~50대 자영업자가 이들의 먹잇감이 됐다.

특히 이들은 대출 때 필요한 앱이라고 속여 악성 앱을 설치하게 했다. 이 앱은 피해자들이 기존 대출을 갚거나 인지대를 내기 위해 실제 금융회사로 전화를 걸면 전화를 가로채 콜센터 상담원으로 위장한 보이스피싱 조직원에게 연결했다.

피해자들은 치밀한 사기수법에 수상한 낌새를 눈치채기 어려웠다고 입을 모았다.

부산에서 피부미용실을 운영하는 C(60·여)씨는 이들에게 1300만원을 사기 당했다.

그는 “대출을 해주겠다고 속여 돈을 가로채는 수법은 알고 있었는데도 깜쪽같이 속았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보이스피싱 일당은 악성앱 뿐만 아니라 통화중 피해자의 개인정보를 넘겨받은 뒤 신용정보조회 사이트를 통해 대출내역을 파악해 은행 직원처럼 위장하는 수법도 동원했다.

경찰 관계자는 “자기 대출 내역을 꿰뚫고 있으니 피해자들이 당연히 금융회사 직원이라고 믿을 수 밖에 없었을 것”이고 말했다.

지난해 대출빙자형 보이스피싱 신고건수는 4만2248건으로 2016년 3만7222건보다 5026건(13.5%) 늘었다. 피해액도 1344억원에서 1805억원으로 461억원(34.4%) 증가했다. .

반면 검찰·경찰이나 금감원 직원 등을 사칭하는 ‘정부기관사칭형’ 보이스피싱은 8699건에서 7700건으로 999건(11.5%)으로 줄었다. 피해액은 580억원에서 618억원으로 38억원(6.6%) 증가하는 데 그쳤다.

금감원 관계자는 “정상적인 금융회사는 전산비용, 보증료, 저금리 전환 예치금, 선이자 등 어떤 명목으로도 대출과 관련해 선입금을 요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 “3개월만에 1억 번다”는 말에 중국행

국내 모집 총책 정씨는 서울에서 불법 문신 시술업소(타투샵)를 운영하면서 타투기술을 배우러 온 이들에게 “중국에 돈 되는 일이 있다. 3개월에 1억원을 벌 수 있다”고 유혹해 12명을 조직원으로 끌어모았다.

정씨의 꼬임에 넘어가 보이스피싱 조직에 몸담았다가 범죄자가 된 12명 중에는 20대가 9명이나 된다. 이중에는 서울의 4년제 여대를 졸업하고 회사를 다니다 타투를 배우러 정씨를 만났다 남자친구까지 중국 보이스피싱 소굴로 끌고 들어간 여성도 있었다. 임신 중인 30대 여성과 이혼한 남편, 동생까지 끌어들였다 함께 붙잡힌 30대 여성은 쉽게 큰 돈을 벌 욕심에 중국까지 건너가 범죄자가 됐다.

경찰청 관계자는 “보이스피싱 조직원들은 피해액의 5~10%를 받거나 정액을 받는 경우도 있다. 20대에겐 적지 않은 돈”이라며 “좋은 돈벌이가 있다고 유인해 조직원을 모으고 이들이 다시 자신의 지인들을 끌어들이는 식”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이번에 검거된 이들은 피해자로부터 돈을 뜯어내면 수당 명목으로 건당 피해금의 20%를 중국 위안화로 받았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경찰은 이들이 처벌 수위를 낮추기 위해 범죄규모를 줄여 진술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확인된 피해자는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1월초까지 이뤄진 범행 대상이어서 실제 피해자와 규모는 더 클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이들의 통화내역과 계좌 압수수색 등을 통해 추가 피해규모를 확인하는 한편 중국 총책 최모(31)씨 등을 쫓고 있다.

박상진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보이스피싱 범죄조직인 줄 모르고 중국으로 건너간 경우보다 알고도 범죄에 가담한 경우가 더 많을 것”이라며 “자신이 불법적인 이익을 위해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희준 (gurazip@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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