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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도 '세대 프레임'에 갇혔나요

국가현실과 미래

by 석천선생 2018. 3. 2. 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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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송이 기자 입력 2018.03.02. 21:29 수정 2018.03.02. 23:01

 

[경향신문] ㆍ남북 단일팀 등 치열한 여론전
ㆍ알고 보면 ‘세대 차이’ 크게 없어
ㆍ모든 걸 갈등으로 모는 게 문제

또 세대론인가. 취업준비생인 박서회씨(25)가 평창 동계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구성에 대해 젊은층의 반대 여론이 높다는 보도를 접하고 떠올린 생각이다. “양쪽에서 정치적으로 활용하기 좋은 소재잖아요. 각자 원하는 논조대로 끌고 갈 거라는 생각이 드니 미리 신물이 났죠. 역시 이번에도 ‘2030’을 키워드로 한 정치권 논평, 기사, 댓글들이 쏟아져 나오더라고요.”

아니나 다를까. 여와 야, 보수와 진보에선 세대론을 활용한 논평이 나오기 시작했다. “2030세대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공정·상식·노력에 비례한 성취의 가치마저도 문재인 정부는 깡그리 무시했다.”(자유한국당 논평) 보수진영은 문재인 정부 핵심 지지층인 젊은층이 이탈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반대로 더불어민주당은 20~30대의 보수화를 우려했다. “2030세대가 보수정권과 보수언론이 만든 반북 프레임에 갇혀 있다.”(김현 민주당 대변인)

하지만 통계는 조금 다른 결과를 가리킨다. 단일팀에 대한 의견에는 세대 간 결정적인 차이가 없었다. 한국갤럽이 평창 올림픽 개막 전인 1월30일~2월1일 진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남북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구성에 대해 20대의 28%, 30대의 35%가 ‘잘된 일’로 평가했다. 40대는 가장 많은 58%가, 50대는 37%, 60대 이상은 38%가 ‘잘된 일’이라고 응답했다. 반면 폐막을 앞두고는 40대를 제외한 전 세대에서 긍정적 답변이 증가했다. 지난달 20~22일 진행된 갤럽 여론조사에 따르면 20대의 51%, 30대의 46%, 40대의 55%, 50대의 53%, 60대 이상의 45%가 단일팀 구성에 대해 ‘잘된 일’이라고 평가했다.

‘세대 프레임’은 단일팀 논란을 바라보는 적합한 틀이었을까. <세대 게임>의 지은이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한국 사회는 세대 갈등 프레임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단일팀 논란도 그런 측면이 있어요. 물론 세대 간 차이는 있죠. 통일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세대가 있고, 그렇지 않은 세대가 있습니다. 그러나 세대차이가 곧 갈등을 뜻하는 건 아닙니다.”

작은 차이를 모든 문제의 근원으로…‘비겁한 알리바이’

부산청년포럼의 박진명씨(37)는 단일팀 논란에 대해 “앞 세대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통일’이라는 가치를 젊은 세대가 삶에서 받아들일 만한 사회적 합의가 없었다”며 “청년들의 반응만 이상하게 바라보는 프레임으로는 문제 해결이 어렵다”고 말했다. 권명아 동아대 한국어문학과 교수는 “이 문제를 경쟁체제에서 살 수밖에 없는 젊은 세대와 통일과 평화를 당연시하는 기성세대로 구별하는 것은 사회문제를 세대론으로 전가하는 비겁한 알리바이”라고 말했다. 세대 특성과 세대 갈등으로 한국 사회의 다양한 문제를 설명해온 세대 프레임은 각종 선거에서 세대가 중요한 결정 요인으로 부각되면서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세대 프레임은 이 틀로 설명되지 않는 다양한 집단들의 현실과 욕구를 외면하게 하거나 문제를 발생시킨 근본 원인을 가린다는 지적이 제기돼왔다.

세대론 vs 지역 격차

지난달 한 지방의 일자리 박람회에 모여 구직 상담을 하는 청년들. 지방 청년들의 욕구에는 기존 세대론을 벗어나는 지점이 있다.

세대 프레임은 세대 내에 존재하는 다양한 격차들을 가린다. ‘자기계발’ ‘스펙쌓기’ ‘생존’ ‘경쟁의 내면화’로 요약되는 청년들의 삶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 사회의 모습을 대변하지만, 이 틀로 설명되지 않는 청년들의 삶과 욕구는 배제된다. 논문 ‘청년세대 구성의 문화정치학’을 쓴 김선기씨는 “중산층 대학생의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청년세대 담론과 거기 바탕을 둔 청년정책은 대학에 가지 않은 청년층이나 빈곤층 대학생들에게는 담론적으로 또 실제 정책적으로도 억압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저는 일단 고등학교 때부터 그런 자리(높은 자리)랑 상관이 없어진 것 같아요. 도전을 하면 그 도전을 위한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드는데 전 그런 도전을 하기에는 너무 게으른 것 같고 노력도 없을 것 같고 뭔가 도전을 해도 실패가 보이는 것 같아요.” 지난해 최종렬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가 지방대생 6명의 심층 인터뷰를 바탕으로 쓴 논문 ‘복학왕의 사회학: 지방대생의 이야기에 대한 서사분석’ 인터뷰에 참여한 한 학생은 이같이 말했다. 최 교수는 기존의 청년담론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지방 청년들의 이야기를 전했다. “지방대 학생들은 ‘경쟁에서 낙오되지 말자’가 아니라 ‘가족 안에 머물자’는 생각을 해요. 생존하려면 경쟁에 뛰어들어야 하는데 밖에 나가서 승리할 가능성이 별로 없기 때문이죠. ‘어차피 승리를 못할 텐데 뭣하러 경쟁에 뛰어드냐, 우리끼리 한바탕 즐겁게 놀자’ 같은 마음이에요. 서로서로 기대를 낮추고 성과에 대한 요구를 하지 않고 작은 성취에도 크게 기뻐해주고 적당하게 관여하면서 즐겁게 살고자 하는 거지요.”

최 교수가 심층 인터뷰한 지방대 학생들에게서 발견한 것은 세대 간의 갈등보다 세대 연대에 가까웠다. “국가가 제대로 역할을 못하니까 세대 간 ‘연민의 공동체’가 만들어졌죠.” 최 교수는 지방 청년들이 주어진 세계를 전부로 보지 않도록 새로운 체험이 필요하다고 했지만 지역사회 여건상 쉽지는 않다. 기존 세대 프레임이 모든 청년을 설명하지 못하듯, 연민의 공동체가 지방 청년의 삶을 대표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수도권 대학생을 중심으로 형성돼온 세대담론이 설명하지 못했던 목소리가 반영됐다는 의미가 있다.

기존 세대담론이 담아내지 못하는 지역 격차는 지역에 남아 살고 싶은 청년들에게는 절박한 문제다. 전남 순천에서 대학을 졸업한 홍지애씨(29)는 “경쟁이 확실히 덜하다. 토익이나 대외활동을 열심히 하는 친구들이 조금 있었지만 여유 있게 대학생활을 하는 친구들이 더 많았다”며 “그런 친구들은 순천·광양 주변 공단에 취업해 먹고살 정도의 일자리를 잡고 싶어 했고 지역을 벗어나고 싶어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청년들에게 지역의 경제적·문화적 기반은 열악하다. 박진명씨는 “지역 환경은 아주 더디게 개선되고 청년들이 지역을 빠져나가는 속도는 빨라진다. 그래서 사람이 더 남지 않게 되어 악순환이 된다”며 “이는 지방 중소도시로 갈수록 더욱 심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대론 vs 여성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의 피해자를 추모하는 여성들. 이 사건은 그동안 억압됐던 여성의 목소리가 두드러지는 계기가 됐다.

“‘김치녀’ 프레임을 벗어나려면 능력 있고 독립적이고 예뻐야 한다고 생각들을 해요. 그래야 남자들에게 빌미를 안 준다는 거죠. 성별 격차라는 사회의 문제를 개인에게 돌리는 거죠.” 박서회씨는 ‘N포 세대’로 대변되는 세대론이 20대를 통과하는 자신의 고민을 잘 설명해주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세대론에는 여성혐오의 최전선에 놓여 있는 20대 여성에 대한 이야기가 빠져 있기 때문이다. 취업이 안돼 연애, 결혼, 출산 등을 포기했다는 ‘N포 세대’ 프레임 자체는 남성 위주의 언어다. “남성을 기본값으로 상정한 설명 같아요. 취업이 힘들어 결혼을 포기했다는 건데 여성들은 또 다르거든요. 내 커리어가 중요하기 때문에 결혼 후 아이를 돌보느라 경력단절을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는 경우도 많아요. 적지 않은 여성들이 결혼하지 않는 데에는 이런 이유가 돈보다 앞선다고 생각해요.”

배은경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논문 ‘청년세대 담론의 젠더화를 위한 시론’에서 “‘3포’에서 ‘7포’까지 이어지는 수많은 포기의 목록들이 2000년대 이후 약화된 혹은 불가능해져 버린 근대적 젠더관계에 기반한 생애주기 표준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N포 세대’론은 취업난에 처한 젊은 남성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고, 이들이 취업, 결혼, 출산, 양육으로 이어지는 생애주기에서 이탈한 것에만 초점을 맞춰 청년세대 문제를 진단했다는 것이다. ‘N포 세대’ 프레임은 성별 격차의 문제는 가린 채 안정적인 일자리와 지위만 확보하면 저절로 문제가 해결되는 것처럼 그렸다는 것이다.

2016년 서울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피해자를 추모하며 ‘나는 우연히 살아남았다’고 말하며 쏟아져나온 20~30대 여성들의 목소리는 그간 청년세대 담론이 여성들이 당면해온 문제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박서회씨는 평창 올림픽 단일팀 또한 ‘공정성’ ‘대북관’에 대한 세대 차이보다 ‘성차별’에 초점을 맞춰 바라본다. “평창 올림픽 단일팀을 반대하는 입장은 아니에요. 그러나 단일팀 선정에 ‘여성’이 변수가 됐다는 생각은 들어요. 그 지점엔 비판적이죠. 하지만 이 문제는 전형적인 청년담론 프레임인 공정성으로만 논의가 됐어요.”

세대론 vs 계급

2016년 시간당 최저임금 1만원 실현을 촉구하는 청년단체 회원들. 최저임금 인상 문제는 세대 대결로 쉽게 치환되지 않는다.

“세대 게임은 사회문제를 ‘세대’의 부호로 변환한다. 세대 게임 플레이어들은 중요한 사회문제가 세대 대립에서 발생한다고 주장하면서, 다른 가능한 원인에 주목하지 못하도록 만든다.”(전상진의 <세대 게임>)

특히 양극화와 같은 계급 간 격차 문제는 청년층의 취업난과 맞물려 세대 격차 문제로 바뀌기 쉽다. 그러나 손쉽게 덧씌워지는 세대 프레임은 근본 원인을 가린다. 예컨대 인천공항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반대하는 여론은 공정성에 경도된 20~30대의 세대적 특성에서 기인한 것인가, 외환위기 이후 지속돼온 고용 관행의 모순이 누적된 결과인가. 또 최저임금 인상은 자영업자인 50~60대 편의점주와 20대 아르바이트생 간 세대 갈등의 문제인가, 양극화된 임금 격차 때문인가. 전 교수는 “기성세대나 노년세대를 겨냥하는 세대전쟁론은 문제의 구조적 원인, 예컨대 자본, 기업, 그에 기생하는 정치권력과 같은 원인들을 겨누지 않는다”며 “세대전쟁론이 내세우는 청년에 대한 배려는 말잔치에 불과하고, 더 나아가 청년에 대한 선입견이나 편견, 차별을 강화하는 데 기여한다”고 말했다. 청년층 사이에서 자조적으로 흘러나왔던 ‘수저계급론’은 격차로 인한 갈등이 세대 문제가 아닌 계급의 문제임을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한귀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정책센터장은 “세대 간 격차보다 세대 내 격차가 더 크다는 점이 여러 실증 연구로 입증되고 있다”며 “부유한 기성세대가 가난한 청년세대를 착취한다는 이미지와는 반대로 현실은 부유한 기성·청년세대가 한편에, 가난한 기성·청년세대가 다른 한편에 있다”고 했다. 지금 1960년대생은 ‘기득권’으로 매도당하지만 대다수는 대학도 못 가고 좋은 직장에 다녀본 적 없다. 이들은 평생 불안정노동에 시달린 끝에 구조조정을 당하기도 했다. 한귀영 센터장은 “세대라는 벽을 넘어 약자들 간의 연대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G세대·P세대·N포 세대, 청년을 불러온 이름들…제대로 그들 담아냈나 청년세대 담론은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있다. 정보기술(IT)의 발전 및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주체라는 의미에서 청년세대는 IP세대, G세대, S세대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다. 2000년 이후에는 단순히 문화적 차이를 조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세대 간 정치적·경제적 차이를 부각하는 담론도 등장했다. 대통령 선거 등 굵직한 정치 이벤트 뒤에는 청년세대의 선택에 의미를 부여하는 세대론이 등장했다. 2002년 청년세대는 촛불집회와 노무현 후보의 당선을 이끌었다는 의미에서 참여(participation)와 열정(passion)을 뜻하는 ‘P세대’로 분석됐다. 반면 6년 뒤인 2008년을 전후로 청년세대가 정치 참여에 소극적이고 현실정치에 무관심해 이명박 후보의 당선 등 보수화에 기여했다는 의미의 ‘20대 개새끼론’이 등장했다. 2012년 대선을 전후로 세대 변수는 한국의 선거에서 중요한 결정 요인으로 부각됐고 세대 프레임은 각 세대를 정치적으로 동원하는 전략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기초연금, 무상급식, 반값등록금 등과 같은 복지 이슈는 세대 간 자원 배분에 초점을 맞춰 경제적 위기에 처한 청년세대와 노년세대 간 제로섬 게임으로 그려졌다. 지난 10여년간 청년세대를 설명하는 가장 강력한 틀은 청년들의 취업난과 불안정한 저임금 노동에 초점을 맞춘 담론들이다. 2007년 발간된 <88만원 세대>를 시작으로 경제적 불안정으로 결혼·출산 등을 포기했다는 의미의 ‘삼포 세대’ ‘N포 세대’, 포기를 넘어 모든 욕망을 초월했다는 ‘달관 세대’ 등의 담론이다. 국회에 청년정책 전담부처 신설과 청년들의 복지 증진과 권리 실현 등을 뼈대로 한 청년기본법안 6건이 발의됐지만 아직 법안 통과는 되지 않았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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