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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우주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로켓, 25년 만에 '거인'으로 자랐다

新소재,新 과학

by 석천선생 2018. 12. 2.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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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범 기자 입력 2018.12.02. 21:36  

     

[경향신문] ㆍ한국의 ‘로켓 독립’ 이야기


ㆍ누리호 시험발사체 성공…세계 7번째 추력 75톤급 로켓 엔진 개발
ㆍ2021년 1.5톤급 위성 탑재해 발사 예정…‘우주 주권’ 확보 눈앞에

지난달 28일 전남 고흥군 봉래면 나로우주센터 발사대에서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 엔진의 시험발사체가 흰 연기를 뿜으며 하늘로 치솟고 있다. 이상훈 선임기자

한국 로켓이 25년 만에 성큼 자랐다. 무게 1268㎏에 추력 8.8t으로 출발했으나 이젠 무게 52.1t에 추력 75t의 거인이 되었다.

한국이 1993년 자체 개발해 쏘아올렸던 첫 로켓인 KSR-Ⅰ과 지난달 28일 자체 개발, 발사에 성공한 최초의 우주발사체용 로켓인 누리호 시험발사체의 무게, 추력 비교다. 25년간 꾸준히 발전해온 국내 로켓 기술의 결정체인 누리호 시험발사체의 무게가 KSR-Ⅰ에 비해 41.1배 증가하는 동안 추력은 8.5배 늘어난 셈이다. 추력이 75t이라는 얘기는 쉽게 말하면 75t 무게를 쏘아올릴 수 있다는 것이다. 상공에 쏘아올리는 것 자체가 목적이었던 과학로켓(사운딩로켓) KSR-Ⅰ과 비행 성능을 시험하기 위한 시험발사체를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그만큼 로켓의 추력을 높이는 것이 어려운 일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사운딩로켓은 과학기술 연구 목적의 소형로켓을 말한다.

■ 추력이 로켓의 성능을 좌우한다

일반적으로 로켓의 성능을 평가하는 요소 중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추력은 물체를 운동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을 말한다. 로켓의 경우는 연료를 태움으로써 분사되는 가스의 반동에 의해 생기는 힘이 추력이 된다. 뉴턴의 제3법칙인 작용·반작용의 법칙이 적용되는 것이다. 뉴턴은 작용·반작용의 법칙에 대해 “모든 작용에는 크기가 같고 방향이 반대인 반작용이 항상 존재한다”고 설명했는데 로켓의 경우 연료 연소를 통해 가스를 분사하는 작용의 힘과 같은 반작용의 힘을 빌려 상공으로 올라가는 것이 된다.

로켓 엔진의 추력, 그리고 그 추력이 일정 시간 유지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엔진이 예정된 시간 동안 액체연료를 연소해 목표고도까지 올라갈 수 있는지 여부를 가름하기 때문이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 이번 시험발사체 발사가 성공적이었다고 분석하는 이유도 당초 목표로 한 연소시간을 초과하면서 정상추력을 냈기 때문이다.

지난달 28일 발사된 시험발사체는 엔진 연소가 종료된 발사 후 151초 시점에 75㎞ 고도까지 상승했으며 이후 관성 비행을 계속해 발사 후 319초쯤에는 최대 고도 209㎞까지 도달했다. 당초 시험발사체의 연소 목표치는 140초였기 때문에 목표를 초과 달성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항우연은 시험발사체를 쏘아올리기 전 엔진의 성능 검증시험, 즉 액체연료 연소시험을 100차례 이상 실시한 바 있다. 이 연소시험에는 모두 10기의 엔진이 투입됐으며 누적 연소시간은 8326초에 달한다.

추력이 중요한 다른 이유는 로켓의 주요 발사 목적인 탑재체, 즉 인공위성을 지구궤도에 올려놓는 능력과도 연결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로켓의 추력 대부분은 로켓 자체와 연료를 쏘아올리는 데 할애되기 때문에 탑재체의 무게는 로켓에서 극히 일부만을 차지한다. 예를 들어 2021년 발사 예정인 누리호의 경우 중량이 200t에 달하지만 탑재할 인공위성은 1.5t급의 실용위성이다. 누리호는 시험발사체와 같은 75t급 엔진 4기가 1단을 구성하고, 2단은 75t급 엔진 1기, 3단은 7t급 엔진으로 구성된다. 1단의 추력이 300t에 달하는 셈이다.

200t 중량에 추력 300t의 로켓이 실어나를 수 있는 화물이 총중량의 0.75%인 1.5t이라고 하면 사실 매우 좋은 편이다. 2013년 발사됐던 나로호(KSLV-Ⅰ)는 이 비율이 0.07%에 불과했다. 나로호는 총중량이 140t, 1단 로켓의 추력은 170t이었으며 탑재한 인공위성 무게는 0.1t이었다. 누리호가 탑재하게 될 중량의 비율은 나로호에 비해 10배 이상 증가하는 셈이다. 당시 나로호에 탑재된 나로과학위성은 무게 100㎏에 가로 1m, 세로 1m, 높이 1.5m의 소형위성이었다.

로켓 무게에서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로켓 자체보다는 연료와 산화제인 액체산소의 무게다. 나로호의 경우는 연료 무게가 전체 무게 140t의 92.8%가량인 130t에 달했다. 시험발사체는 총중량 52.1t 가운데 연료의 무게가 36.4t이었다.

오승협 항우연 발사체추진기관개발단장은 “발사체의 구성과 로켓에 탑재할 수 있는 중량, 즉 페이로드는 발사체의 성능뿐 아니라 발사 위치와 주변국 상황 등 다양한 제약조건에 의해 결정된다”며 “한국의 경우 고흥에서 발사하기 때문에 1단, 2단 로켓이 분리되면서 제주도나 한반도, 일본, 필리핀 등에 떨어질 가능성을 고려해 결정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나로호도 실제 더 무거운 화물을 실을 수 있었지만 이런 조건을 고려해 100㎏짜리 위성을 싣는 것으로 설계한 바 있다”며 “적도 부근에서 발사하는 나라들은 이런 제약조건 없이 최적화된 설계로 발사체를 구성하고, 탑재 무게를 설계한다”고 덧붙였다. 오 단장은 “같은 추력을 유지하면서 발사체 자체의 중량을 줄일수록 더 무거운 짐을 실을 수 있다”며 “누리호 발사까지 발사체 중량을 줄이는 게 남은 과제 중 하나”라고 말했다.

■ 세계 일곱번째 75t급 엔진 개발

안정적인 추력을 내는 데에는 고도의 기술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이번 시험발사체와 같은 75t 이상의 액체연료 엔진을 개발해 비행까지 그간 성공한 나라는 미국과 유럽, 러시아, 중국, 일본, 인도 정도에 불과하다. 한국은 이 명단에 일곱번째로 이름을 올린 나라다.

한국 로켓 개발의 시작은 1993년 발사에 성공한 과학로켓 KSR-Ⅰ이었다. 1990년부터 총예산 28억5000만원가량을 투입해 3년 만에 처음으로 상공에 쏘아올린 이 로켓은 고체연료를 사용했다. KSR-Ⅰ은 고도 약 39㎞까지 올라가 낙하거리 77㎞를 비행했다. 고체연료는 비용이 저렴하고 구조도 간단하지만 한번 연소가 시작되면 멈출 수 없기 때문에 추력을 조절하는 것이 어렵다. 이에 비해 액체연료는 연료량 조절을 통해 정밀한 제어가 가능한 데다 엔진도 크게 만들면서 큰 추력을 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어 1997년과 1998년 발사에 성공한 KSR-Ⅱ 역시 고체연료를 사용했지만 KSR-Ⅰ과 달리 2단형이었다. 1997년 7월 첫 발사에서 KSR-Ⅱ는 발사 12초 만에 2단계 로켓 점화에 성공했고, 발사 378초 후에는 127.7㎞ 거리의 바다 위 목표지점에 떨어졌다. 국내 최초의 단분리형 로켓이었던 KSR-Ⅱ를 통해 한국은 1단과 2단 로켓의 단분리 기술을 확보할 수 있었다. KSR-Ⅰ과 KSR-Ⅱ에서 익힌 고체연료 및 단분리 기술은 2013년 발사에 성공한 우주발사체 나로호 2단을 국내 기술로 개발하는 데도 적용됐다.

■ 한국, 곧 ‘우주 주권’ 확보할 듯

국내에서 개발된 최초의 액체연료 로켓은 2002년 8월 발사한 KSR-Ⅲ이다. 최고 고도 42.7㎞까지 올라갔으며 비행거리는 79.5㎞, 비행시간은 총 231초였다. 이어 10년간 5025억원이 투입돼 2013년 발사에 성공한 첫 우주발사체 나로호는 고도 약 302㎞ 궤도에 위성을 안착시키는 데 성공했다. 나로호는 다만 핵심기술이라 할 수 있는 1단 로켓이 러시아 엔진이라는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2단에는 7t급의 고체연료 엔진이 사용됐다. 나로호 발사에 성공했어도 아직 독자적으로 인공위성을 지구궤도에 쏘아올릴 수 있는 능력을 갖추지는 못했던 것이다.

로켓 기술이 없다는 것은 곧 원하는 시기에 필요한 위성을 우주에 쏘아올리는 ‘우주 주권’이 없다는 뜻이다. 최근 한국과학기술원(KAIST)이 개발한 차세대 소형위성 1호가 발사업체인 미국 스페이스X의 사정에 의해 발사가 연기됐던 사례는 로켓 기술의 확보가 왜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한국은 독자적인 위성 발사가 가능해지는 누리호 성공 시점에 우주 주권을 확보하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앞으로 항우연은 누리호 발사 전까지 75t급 엔진 39기를 제작해 약 200회의 연소시험을 수행할 예정이다. 이어 75t급 엔진 4기로 구성될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의 1단 구성을 위한 클러스터링 시험을 수행하게 된다. 3단에 들어갈 7t급 엔진은 14기가 제작되며 약 150회의 연소시험이 예정돼 있다. 누리호의 본발사는 2021년 2월과 10월 두 차례 예정돼 있다. 1차 발사에서는 ‘더미(dummy) 위성’, 즉 중량은 비슷하지만 위성 기능은 없는 탑재체를 싣고 성능을 테스트한 뒤 2차에서 실제 위성을 탑재할 예정이다. 제작에 수백억원의 비용과 긴 시간이 투입되는 인공위성을 우리가 만들어 우리의 힘으로 우주궤도로 쏘아올릴 날이 머지않은 것이다.

김기범 기자 holjja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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